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랜도 매직 (문단 편집) ===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시대 === 1999년 오프시즌에 팀은 데일리 감독 대신 TNT 해설위원이던 [[닥 리버스]]를 감독으로 선임했는데,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리버스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을 대폭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페니를 피닉스 선즈의 대니 매닝, 팻 개리티,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각각 바꿨는데, 이 중 매닝은 밀워키 벅스의 크리스 개틀링 및 아몬 길리엄과 맞바꿔졌다. 유일한 원년 멤버 앤더슨은 새크라멘토 킹스의 타리크 압둘와하드 및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바꾸는가 하면, 그랜트는 2000 및 2001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 2장과 묶여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데일 엘리스, 돈 맥린, 코리 마게티, 빌리 오웬스 4명이랑 맞바꿨다. 또한 오스틴도 워싱턴 위저즈의 [[벤 월러스]], 테리 데이비스, 팀 레글러, 제프 매키니스 4명과 맞바꿨다. 그 자리엔 유럽 리그에서 뛰던 존 아미치[* 은퇴 후 2007년에 자서전 을 통해 NBA 선수 출신으로서 최초로 게이라고 커밍아웃해서 화제가 됐다.]와 처키 앳킨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얼 보이킨스 등을 FA로 영입했다. 그는 임기 첫 시즌에 총 40번의 선수 이동, 44명의 로스터 등재 등으로 선수진을 갈아엎었다. 정규시즌 개막 당시만 해도 무명 혹은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늙은 선수들이 많아 하위권으로 떨어질 줄 알았으나, 리버스 감독의 강력한 선수단 장악력과 아웃로, 암스트롱, 아미치, 몬티 윌리엄스 등의 조직력 중심 플레이 덕에 41승 41패로 8년 연속 5할을 찍었고, 시즌 도중인 2000년 2월 1일에는 압둘와하드와 크리스 개틀링, 미래의 드래프트 1라운드 1장을 덴버의 론 머서 및 천시 빌럽스, 조니 테일러를 받아와 페이롤의 안정을 꾀했다. 비록 막판에 패해 플옵은 못 갔으나, 리버스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또한 페니의 백업이던 대럴 암스트롱은 이 시즌에 여느 동료들보다 많은 출장시간 소화와 16.2 득점 / 6.1 어시 / 2.1 스틸로 3위를 기록해 올해의 식스맨상 및 기량발전상(MIP)[* 참고로 이 수상은 2021년 현재까지도 NBA 사상 역대 최고령 기량발전상 수상 사례이다.]을 받았다. 2000년 오프시즌 때 샐러리가 2천만 달러나 많이 비면서 FA 영입에 적극 나섰는데, 당초 목표는 FA 대어급 3총사 [[팀 던컨]], [[그랜트 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였다. 팀은 먼저 힐을 얻고자 벤 월러스와 처키 앳킨스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팔았고, 맥그레이디는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토론토 랩터스로 팔아가며 받았다. 그러나 던컨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남음으로써 영입이 무산됐다. 드래프트에서는 플로리다대 출신 마이크 밀러를 5번, 미주리대 출신 키언 둘링을 10번, 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즈노 캠퍼스 출신 코트니 알렉산더를 13번으로 각각 뽑았다. 다만 이들 중 둘링은 마게티, 스트롱과 묶여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2006년 1라운드 픽과 맞바꿔졌고, 알렉산더는 댈러스 매버릭스의 2001년 1라운드 픽과 바꿨다. * 이때 매직은 놀랍게도 세명을 모두 영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슈퍼스타 세명을 영입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00오프시즌 기준으로 맥그레이디는 99-00시즌 당시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15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초대형 유망주 정도였기에 슈퍼스타까지는 아니었기에 사실상 초특급 슈퍼스타 2명+특급 유망주 한명을 영입하는 것이라 가능했던 것. 이 중 플로리다 출신인 맥그레이디는 일찌감치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그랜트 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던컨을 합류시키기 위해 매직은 총력을 다한 것. 당시 감독이었던 리버스가 NBA Together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던컨은 그를 위해 매직이 마련한 (타이거 우즈가 함께한) 개인 골프 투어, 식사, 미팅 등을 마치고 난 후 리버스에게 "올랜도에 합류할 것 같긴 한데(pretty sure) 그래도 스퍼스에 예의상 마지막 미팅 기회는 줘야할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왜 영입이 좌절됐냐에 대한 증언이 엇갈리는데[* 던컨 본인은 "거의 스퍼스를 떠날 뻔했다"고 한 것 외에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선 언급한 바 없다.] [[그랜트 힐]]은 ESPN에서 2018년 당시에 리버스가 "선수 가족은 팀 전용기에 탈 수 없다"고 한 것 때문에 틀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리버스는 "가족들이 가끔은 탈 수 있다"고 했다고 이 설을 부인한 바 있다. 어찌됐건 올랜도에서 매직 관계자들과 던컨은 팀 합류에 대해 상호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헤어졌으나, 샌안토니오에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하와이 휴가 도중 급하게 날아온 선배 [[데이비드 로빈슨]]의 간절한 설득으로 결국 잔류를 선택한 것.[* 던컨은 올랜도의 6년/6천750만달러 딜을 거절하고 스퍼스에 3년/3천260만 달러 딜을 선택했다. 돈 자체도 더 많지만 보통 선수들이 (FA타이밍을 노리는게 아니면) 장기계약을 선호하기 때문에 매직 딜이 더 매력적인 딜이었다. 특히 던컨은 직전 시즌 무릎부상으로 포스트시즌을 아예 못 뛰기까지 했다.] 리버스는 이에 대해 "스퍼스가 마지막으로 설득할 기회를 준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설명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답을 미루던 힐이 올랜도와 계약하기로 결정했지만, 다행 중 불행으로 그 힐이 입고 있던 발목 부상이 최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파일:external/68.media.tumblr.com/tumblr_ofo2jreLiY1unyt4ho1_1280.jpg]] 왼쪽부터 마이크 밀러,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그랜트 힐. 정규시즌 들어 맥그레이디는 2001년에 기량발전상(MIP) 수상, 올스타 선발, 올 세컨드 팀에 뽑히며 리그 최고의 [[스윙맨]]으로 차차 성장했고, 신인인 밀러도 괄목상대할 만한 실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힐이 전 시즌 때 입은 발목 부상이 재발해 4경기밖에 못 나갔고, 시즌 내내 스타팅 라인업이 자주 변동되어 플레이가 불안정해 43승 39패로 플레이오프에 나갔지만 당시 다크호스인 밀워키 벅스에게 1라운드에서 1승 3패로 떨어졌다. 2001년 오프시즌에는 골밑 보강을 위해 레이커스에 있던 그랜트와 시애틀에 있던 [[패트릭 유잉]]을 각각 FA로 부르고, 힐이 건강을 회복하고 맥그레이디, 밀러와도 융화되어 동부의 우승 후보로 예상됐지만, 정규시즌에서 힐이 부상으로 14경기만에 시즌아웃된 데다 11월에 피닉스 선즈 및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 3각 트레이드를 벌여 골밑의 핵인 아웃로를 피닉스 선즈의 저드 버츨러와 맞바꾸는 이상한 짓을 벌이는 바람에 이마저도 노장 그랜트와 유잉에게 의지해야 했다. 아무리 젊은 선수 밀러가 도움을 준다 해도 맥그레이디에 모든 걸 의지해야 했고, 44승 38패로 플옵에 또 나갔지만 샬럿 호네츠에게 1승 3패로 탈락했다. 2002년 오프시즌 때 힐이 2년간의 재활과 3차례의 무릎 수술로 다시 쌩쌩해지는 듯하다가 1달만에 부상으로 드러누웠고, 이에 맥그레이디는 은퇴를 고려하기까지 했다. 팀은 포틀랜드의 노장 [[숀 켐프]]와 시애틀의 [[올루미데 오예데지]][* 2005-06 시즌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그 선수가 맞다!], 애틀랜타의 자크 본을 각각 FA로 영입하면서 맥그레이디를 보좌시키도록 했지만 이거 갖고는 택도 없었다. 거기에 힐의 거액 연봉도 새 선수 영입을 막는 재정상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정규시즌에선 그랜트도 부상당해 결장했고, 밀러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신인 선수 드류 구든 및 고단 기리첵과 맞바꿔졌다. 이에 맥그레이디가 분전하여 42승 40패로 또 한번 플옵에 갔지만 디트로이트에게 3승 4패로 졌다. 이 시즌에서 맥그레이디는 23세에 최연소로 '올해의 득점왕'을 받고 올 퍼스트팀 2년 연속 선정으로 '동티맥-서코비'로 명실공히 더 높은 입지를 다졌다. 2003년 오프시즌 때 암스트롱을 뉴올리언스 호네츠로, 그랜트를 레이커스로 각각 떠나보낸 후, 덴버 너기츠의 주완 하워드와 워싱턴 위저즈의 타이론 루를 각각 FA로 영입했고, 특히 하워드는 구든밖에 없던 로포스트를 채워줬다. 거기에 앤드류 디클락과 재계약한 후 드래프트에서 루이빌대 출신 리스 게인스를 15번, 조지아인 선수 자자 파출리아를 42번으로 각각 뽑고, 밀워키 벅스가 43번으로 뽑은 키스 보건스를 현금 트레이드했다. 그러나 힐과 개리티의 부상, 하워드의 포지션 중복, 암스트롱의 부재 등의 악재가 생겨 정규시즌 초반에 11월 전패를 포함한 19연패를 기록해 리버스 감독이 도중에 잘려 조니 데이비스 코치가 급히 감독을 맡았고, 2004년 3월에는 가브리엘 단장도 잘려 모기업 RDV 스포츠의 COO였던 존 와이스브로드가 임시 단장을 맡았다. 맥그레이디는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2년 연속 득점왕을 받는 등 나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최종 21승 61패를 찍어 전체 꼴찌로 떨어졌다. 리더였던 맥그레이디는 이 시즌 실패의 책임을 팀 전력과 동료들에게 전가함으로써 팬들로부터 '나약한 리더' 소리를 들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